비원(榧園) 2010. 4. 6. 21:48

 

 

 외할머니의 영가

                                                                                            

 

 

 

하얀 눈이 사륵사륵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날

어머니 한테서 따르릉~~``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즉 외할머니의 산소를 이장을 해야겠다는 내용이였다 이장할 장소는 친척 공동 묘지의 장소다

어머니는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깊은 산속에 묻혀있는 할머니의 산소를 늘 못 마땅히 여겨왔다

 

출가외인 딸이 친정 어머니를 돌아가시는 날까지 모시고 살다가 돌아가자 그렇게 친척 공동 묘지가 있는데도 불구 바라지않던 장소에 묻혀 오늘 날까지 한이 맺혀왔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눈물어린 모정의 세월

할머니는 1남 4녀를 낳고 평범하게 크고 작은 밭 돌랭이와 몇 마리의 소와 말도 깨있었다고 들렀다 그렇게 남부럽지않게 살아오던중 큰딸만 출가를 시키고 어린자식들과 아내를 남겨둔채 할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중 저희 어머니는 셋째 온갖 서러움과 고난 속에서도 오손 도손 살며 외동아들 오빠도 결혼을 했으며 줄곳 농사일은 어머니가 도맡아 그나마 행복하게 살아오던중 일제시대 당시...

오빠는 행방불명이 되버리고 집안은 점점 초라해 지면서 이웃은 물론 온갓 멸시와 양자를 빨리 데려야 된다며 하루 하루의 서러운 생활을 하게 되였다

 

그중 어머니는 어릴적 부터 유독 부지런하여 동네 소문이 자자 할 정도였다고 하였다 옛말에 착하고 똑똑한 아이는 반대로 복이없고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아이는 복이있다고 하드니...

끝네 남편을 잃고 친정 어머니와 얺혀 살게 되였으며 딸은 멈마를 위로 하고 엄마는 딸을 위로 하며 친정집을 돌보며 험난한 애환의 여정길을 걸으며 일생을 살게 되였다

누구나 외할머니의 애정은 깊겠지만 기억을 되살리면 그때는거수위병이라고 돌만 구워 제가슴과 제 배를 울려 주시며 자장가를 불러 주셨죠 약도 안먹고 자연 치유였다 한번아프기 시작하면 한보름 스므날은 꼼짝없이 방 내구석을 돌정도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어머니는 밭일 바다일 눈이오나 비가오나 하루도 노는날이 없었고 그렇게 외할머니는 내 동생들 까지 애지중지 키워 주셨다

그런 외할머의 은덕 똑똑한 어머니의 머리를 물려 받았는지 외손들은 올바르게 잘 자라 이 사회에 제 역할을 다하는 교장" 손 들은 의사" 사장이"되였으며 여기에 이르기까지에는 절대적인 어머니의 억척 같은 삶이였다  (어머니의 올바른 정신력 생활력 조금이나마 본받고 싶다)

 

외할머니의 은혜는 하늘과도같아 어머니의 전화내용에 우리 남매들은 힘을 모으기로 했죠 팔순이 훨신넘어 구십에 다다른 딸의 애절한 효성에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문중 회장님을 비롯 몇몇 친척분들과 상이 타협끝에 드디어 이장길에 오르게됬다

 

친척들이 등살에 못이겨 양자를 할머니 살아계실적에... 일찍이 외삼춘이 행방 불명이라 언젠가는 살아서 돌아오리라는 기대를 하며 사망 신고도 하지않은상태라 호적에도 생남으로 올렷죠 조카도 물론  결혼도 하고 몇년에 한번 오락 가락 하며 육지에서 지내다  어느날 갑자기와서  큰밭 작은밭 다팔고 벌초는 커녕 종무소식..

이럴수가...

지금와 생각해보니 양자도 생남도 아무 소용없는일

 

이리하여 따스한 봄 한식날 험한 소낭 트멍을 벗어나 넓고 높은 양지에 이르니...

 

이리보아도 시원 저리보아도 시원..

높은 오름 품에 안긴듯 명당중에 명당이어라~~

온 세상을 다 얻은듯..

어머니의 그 기쁨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저희들도 어머니와 함께한 기쁨은 말할수 없었죠

아침엔 자욱했던 안개비는 차츰사라지면서 맑은 봄 햇쌀이 곳 드리울것 같았다

 

 

 

외할머니의 초상을 그려보며 2010/4.6